1. 그놈의 지방이전
전공 특성상 석사 학위 이후 공공기관에서 계속 일해왔는데, 문제는 공공기관이 계속해서 지방이전을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직장은 중앙부처 소속의 연구기관이었다. 서울에 있던 그 연구원은 입사 6개월 만에 세종시로 이전했는데, 어차피 계약종료를 앞두고 있어서 잠깐 세종시에 집을 구해 살면서 이직을 준비했다.
나의 두번째 직장은 또 다른 중앙부처 소속의 연구기관이었는데, 경기도에 있어서 출퇴근시간이 왕복 4시간이었다. 그래도 본가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여서 잘됐다고 생각했었는데.. 들어와서 보니 이 곳 역시 지방이전 이슈가 있었다. 그래도 아직 이사 갈 연구소가 건축중이라 지방이전까지는 몇 년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 다녀보자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같은 팀 팀장님의 권유(너는 똑똑하니 우리랑 같이 지방에 가지말고 기회있을 때 서울에 있는 더 큰 조직으로 가라고 거기 채용공고를 보내줌)로 서울에 있는 중앙부처의 연구직 자리에 지원을 했고, 별 준비안했는데 그냥 합격을 해버렸다.
그곳은 전팀장님이 말씀하신대로 내 업무분야에서는 국가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기관이었다. 막상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뭐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는 드디어 다시 서울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5년 내내 지방이전 하냐마냐 말이 많더니만, 결국 갑자기 정부 기조에 따라 세종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보수가 집권하는 동안 노무현대통령발 지방이전이 그래도 좀 잠잠하더니만, 진보가 다시 정권을 잡은 이후 지방이전 이슈가 부활해버렸다.)
2. 일반임기제 공무원?
사실 이곳은 업무만족도... 아니 워라벨이 좋았어서 왕복 5시간 출퇴근을 해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나의 건강상태나 미래계획 등을 이유로 이직을 준비하게되었다. 공공 일자리의 특성상 계속 지방이전의 이슈가 있으니 이번엔 아예 지방이전같은 건 없는 '서울시'로 가자 하고 알아보다 알게 된 것이 서울시 일반임기제 공무원이었다.
원래는 서울시의 지방직 공무원 7급을 생각했었다. 앞으로 아이도 낳아 길러야 하는데, 경험상 공공 일자리만큼 출산, 육아가 편한 곳은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사실 주변 친구들 중에 공무원이라고 하면 모두 대학 때 고시를 통해 5급 공무원이 된 상태라 7급은 굉장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알아보다보니 7급 자체도 굉장히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공부해야하는 과목이.. ㅎㄷㄷ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수험생이 되어야 한다니 토할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7급이 요구하는 공부량을 생각했을 때, 5시간 통근의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하는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한 불이라도 꺼보자 하고 선택한게 임기제 공무원이었다. 5년짜리 자리였지만, 잘하면 5년+5년+5년 총 15년까지 연장이 가능했고, 임기제라 연봉도 일반 공무원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나중에 결국 7급 공무원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미리 호봉도 올리고 공무원연금도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게 아니면 계속 세종 쪽으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서 자소서나 면접을 빡세게 준비했다. (역시 갈급함의 크기만큼 아웃풋이 나온다.)
3. 자소서 준비
내가 지원한 자리는 6급 수준의 자리로 '주무관'이라 불리는 자리였다. 공공직 특성상, 업무내용이 거의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어 업무계획서를 작성하기는 편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업무 명을 검색해서 현재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이름을 찾았고, 그 사람 이름으로 작성된 공개문서를 검색하니, 최근 5년동안 그 사람이 올린 문서들이 보였다.
비공개인 문서들은 대부분 비용처리와 관련된 것이나 민감한 회의결과자료였고, 내가 필요한 업무계획, 업무결과 보고 자료들은 다 볼 수 있었다. (문서 중간중간에 주요 수치들은 ** 처리되어 있긴 했지만 그건 자소서 쓰는데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맡게 될 업무와 관련된 계획보고와 결과보고자료들을 다 뽑아서 보다보면 사실 자소서에 쓸 내용들이 다 들어있다. 이 업무가 왜 중요한지, 어떤부분이 중요한지, 어떤 문제점이 있고, 향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인지 그 문서들에 다 나와있다. 이제 그렇게 찾아낸 업무와 나의 능력치+경험치를 짬뽕시키면 된다.
이 자리에는 이러이러한 중요한 업무가 있는데, 이 업무에서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나는 기존에 이런 걸 공부했고, 이런 일을 하면서 이런 능력을 키웠으니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 또는 이 업무는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해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업무 하나 당 A4 반페이지 정도 서술형개조식으로 작성했다.
4. 면접 준비
1차로 면접자 발표에서, 나는 내가 지난 날 열심히 검색했던 현재 실무자 이름을 발견했다. 아 이 자리 정말 헬이구나. 이사람 이런식으로 5년마다 다시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본건가?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래도 10년 일하고 또 다시 이 자리를 지원한 거 보면 그렇게 나쁜 자리는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이미 5년 연장된거 보니 이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인가 싶어 과연 면접에서 내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이니 내정자가 아닌가 걱정도 됐지만, 서울시의 채용시스템상 이 업무 관계자가 채용심사에 관여할 수 없으니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업무관계자가 채용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건 사실 외부 지원자로서는 가장 큰 이점이다. 심사자가 이 업무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니.
유튜브에 공무원면접관련 영상을 여러편 찾아봤다. 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정말정말 정말 많은 영상들이 있었다. 많은 영상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니 뭐 많이 볼 필요도 없다.
(1) 필수 준비 답변인 지원동기, 자기소개, 직무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다시 정리해서 적어보고, 내가 쓴 자소서에서 추가로 질문이 나올만한 것들이 없는지 점검하며 답변을 준비했다. (필수 답변의 경우에는 몇 번이나 거울보고 말하면서 외웠다. 면접장 들어가자마자 해야하는 말이니까.)
(2) 지금까지 거쳐온 직장에서 각각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씩 정리해서 간단한 답변을 준비했는데, 자소서 준비할 때 미리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전에 했던 일이라 기억을 잘 못하고 있었는데, 정리하다보니 서울시에서 내가 맡을 업무와도 연관시킬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3) 내가 이 자리를 맡게된다면 하게 될 업무에 대해서도, 자소서 준비하면서 뽑아뒀던 계획보고와 결과보고자료들을 한 번씩 보며 정리했다.
(4) 유튜브 영상에서 찾은 알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변도 준비했는데,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했을 때 어떻게 할건지, 지난 업무에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지, 인간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건지, 왜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입사후에 비전은 어떤지, 워라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 팁 : 면접관들도 결국 어떤 항목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를 한다. 면접공고에 보면 평가 항목이 제시되어 있는데, 공직윤리, 창의성, 업무능력 등등이다. 이 평가항목을 평가할 수 있는 답변을 하나씩 매칭해서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기소개에 나의 창의성을 강조할 수 있는 답변을 끼워넣는다든가, 지난 나의 업무에 대한 답변에 업무능력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멘트를 준비하는 것이다.
5. 면접 후기
준비과정까지는 내맘대로 씨부릴 수 있어도, 면접 내용에 대한건 유출하면 안된다고 시험지에 쓰여있어서 여기부터는 조심스럽게 작성해야 할 것 같다. 뭐 어떤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 경우 어떻게 직무를 수행할건지 직무계획을 작성해야 한다(이건 공고에 나와있는 부분).
근데 이건 그냥 내 생각이지만, 여기서 제시하는 특정상황은 별 의미 없는 것 같다. 그냥 자소서에 열심히 적었던 직무계획서 달달 외워서 쓰는게 나을거 같다. 막상 면접지원자들끼리 이 직무계획서 가지고 토론할 때도 보니까 다들 그냥 각자 직무계획서 써서 발표한 거 같았다. 이걸 작성할 시간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시험지를 받아서 읽고 고민하는 시간 없이 그냥 내가 썼던 직무계획서 외워가서 쓰는 게 차라리 경쟁력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썼던 건 그래도 자신있으니까.
토론면접이 끝나면 심사위원이 작성할 나에대한 평가지를 들고 면접장에 들어가는데, 그 평가지에 심사위원들이 나에대해 평가해야하는 항목이 적혀있다. 위에서 말한대로 나는 각 항목에 대해 준비했기에 면접관의 질문이 어떤 항목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인가 생각하고 미리 준비했던 답변을 매칭해서 답변한 것이 많다.
그리고 이것 또한 앞서 말했듯이 심시위원이 나보다 내가 맡을 업무에 대해 모른다. 즉, 내가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정보가 심사위원이 아는 정보보다 많다. 이걸 확신하는 이유는 내가 받은 질문중에 내가 맡을 업무를 잘못 이해한 틀린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 사람 내가 맡을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구나.'라고 생각하니 답변에 자신감이 더 생겼다. 이미 업무계획에 나와있는 내용을 내 생각인듯 말해도 심사위원은 모를 가능성이 크니 그냥 자신있게 말해도 될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 공무원 면접은 무조건 기본 블랙정장이어야한다고 해서 누가봐도 신입사원면접같은 머리와 복장으로갔는데, 경력직 자리라서 그런지 그렇게 입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그냥 단정한게 입고 온 정도였다.
6. 합격 발표후 임용까지
(1) 서류제출
인터넷으로 합격발표가 나고 며칠 내내 계속 잠잠하다가 갑자기 어느날 오후에 담당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까지 아래 필요 서류들을 제출해주세요".
근데 이게 하루만에 간단히 준비할 수 있는게 아니다. 특히 신체검사서 당일발급되는 병원은 서울에 강남 한 곳 뿐이다(당시 내가 검색해 본 결과로는). 그리고 학위 증명서, 초본, 등본, 증명사진, 신상에 대한 문서 등등. 급하게 다음날 연차를 쓰고, 신체검사 가능한 병원 예약을 하고, 증명사진을 위한 스튜디오도 예약하고... 신체검사 병원에서는 그 전날 굶고 아침 일찍 오라고 하고, 아침 일찍 검사를 해도 검사결과는 오후가 되어야 나온다. 그 사이에 사진을 찍고, 문서를 출력하고... 나는 오후 4시인가 신체검사 결과서를 받아서 직접 시청에 제출하다보니 하루가 빠듯했다.
모든 걸 급하게 처리하느라 고생했는데, 막상 제출하고 나니 그냥 담당공무원이 본인의 업무 편의를 위해 나에게 급하게 요구했다는 생각도 든다.
(2) 연봉협상
연봉협상이랄 것도 없다. 이전에도 정부부처에서 일했으니 당연히 그 경력이 산정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말로는 원래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하한가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나중에 혹시나하고 따로 관련 지침을 찾아보니, 첫 임용은 하한가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이건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3) 인수인계
이전 업무 담당자가 내 임용 전에 퇴직을 하다보니 나는 내 임용전에 미리 가서 인수인계를 받아야한다. 사실 나는 이 부분도 좀 어의가 없었는데, 돈도 안주는 날에 일주일이나 인수인계를 위해 출근이라니, 나중에 이거 휴가로 빼줄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그 후에도... 할많하않...... 씁. 아직 모르긴 몰라도, 확실한건 이전직장보다는 경직된 분위기인 것 같다.
(여담) 서울시 분위기에 대한 얘기들
서울시 공무원들 분위기가 완전 꼰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나이든 사람이 많고, 야근은 필수인데다가 연차나 퇴근도 눈치봐야 하고, 주말에도 공무원 인력을 동원하는 사업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며, 보수 같은 행정처리도 자기꺼 자기가 해야한다는 이상한 소리도 들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곧 실상을 알게되겠지.
그리고 전 1년만에 서울시를 떠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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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가능한 질문하시면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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